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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대선 후보들, 역사를 제대로 보라 - 조성환 교수 (조선/ 121029)

설지선 2012. 10. 29. 10:01

[시론] 대선 후보들, 역사를 제대로 보라 (조선/ 121029)

 조성환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과거사 공방 계속, 위험한 흑백논리… 역사 왜곡은 물론 정쟁과 분열 심화
정파적 해석으로 과거 가두지 말고 발전적 인식으로 국민 통합 이뤄야

 

18대 대선 레이스가 미래 개척의 국민적 축제가 되기 힘들 것 같아 걱정이다. 박정희의 딸, 노무현의 비서실장이 여당과 야당 후보가 됨으로써 박정희와 노무현의 어두운 그림자에 대한 심판이 될 공산이 커졌다. '낡은 세력'을 응징하는 기사(騎士)를 자처하며 나타난 안철수 후보는 대한민국의 과거에 대한 최소한의 존경심도 없는 듯하다.

박근혜 후보는 인혁당 관련 발언 논란을 아버지 시대에 대한 사과로 탈피하려 했지만 이어 터진 정수장학회 문제로 '과거사'에 대한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문재인 후보는 남북 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적절한 발언 여부에 대해 재빠르게 선 긋기를 했지만 노 전 대통령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는 미래 가치와 낡은 정치, 상식과 비상식이라는 명쾌해 보일지 모르지만 위험천만한 흑백논리로 기성 정치권을 공격하고 있다. 이번 대선의 프레임은 상대 후보를 과거의 어두운 그늘로 몰아쳐서 그 반사이익을 챙기는 패턴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이럴 경우 국민은 미래를 꿈꾸기보다 '기억과의 전쟁'에 함몰될 것이다.

어느 시대의 지도자이건 엄정한 역사 인식이 있어야 현재의 과제를 직시하고 발전적인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과 언론계·국민의 화두가 된 '역사 인식' 논란은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통합적인 인식의 경쟁이 아니다. 과거의 특정 사건에 대해 정파적인 해석을 내림으로써 상대방을 매도하기 위한 정략에 불과하다. 예부터 정치인과 권력이 역사 해석에 관여하는 것은 금기로 돼왔다. 정치와 권력이 역사적 사건에 대한 판관(判官)이 될 경우 큰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정파적 역사 해석은 역사적 사건을 정치적 목적과 권력적 편의에서 왜곡시키고 소모적인 정쟁과 국민의 분열을 심화시키며 인민재판식 선동정치를 만연시킨다.

우리 사회는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의 역사에 대한 자의적인 규정으로 이미 분열과 갈등의 중병(重病)을 앓아 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역사 바로 세우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제2 건국' 등은 대한민국 헌정사의 연속성을 뛰어넘어 새로운 법통(法統)을 구축하려 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을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던 역사'로 규정하고 일종의 사회혁명인 '주류 세력 교체'를 시도하였다. 이러한 '과거사 청산'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선택한 대한민국의 건국, 가난을 딛고 일어선 산업화의 성취를 무시한 단절적 역사 인식에 근거했다. 이로써 국민은 갈등에 휩싸였고 국가의 정체성이 흐려졌다.

18대 대선이 또다시 '외눈박이 단절사관'으로 국민을 과거와의 전쟁으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 현재의 국가 과제를 슬기롭게 풀어내고, 불확실한 미래의 도전에 창조적으로 응전하기 위해서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구조적 접근과 발전적 역사 인식이 필요하다. 건국·산업화·민주화로 이어진 대한민국의 역사는 서로 다른 세력이 경쟁과 대립을 통하여 주어진 시대적 과제를 풀어 왔지만 그 내용과 구조는 계승되고 보완되어 발전해 왔다. 건국기의 자유민주주의체제 선택은 압축적 산업화의 기초가 되었고, 산업화에 의한 경제성장은 민주화를 안정적 제도로 구조화시켰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의 슬로건은 대한민국 건국에 대한 자긍심, 산업화와 민주화의 변증법적 통합이라는 발전적 역사 인식에 근거하지 않으면 그 진정성이 확보될 수 없다. 대선 후보들은 정파적 역사 해석이라는 저열한 싸움으로 국민을 과거에 가두지 말아야 한다. 국민을 통합하는 발전적 역사 인식의 정립을 위해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쟁하면서 국민의 심판을 받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