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북한發 지령기사
이진녕 논설위원 (동아/111004)
김대중 정부의 강인덕 통일부 장관과 이명박 정부의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경질된 과정을 보면 묘하게 닮았다. 실명까지 거론한 북한의 집요한 비방이 계속되면서 남한에서의 거들기가 확산됐고 결국 경질로 이어졌다.
강 장관이 북한에 밉보인 결정적 계기는 1999년 4월 19일 이화여대 초청 강연이었다. 그는 “김일성 김정일 정권은 인류의 역사 진행으로 봐서 도저히 남겨 놓을 수 없는 정권이고 반드시 붕괴시켜야 할 정권”이라고 말했다. 이에 김정일은 대남선전기구인 통일전선부(통전부)에 “남한 정부 내에 잔존하는 극우세력을 솎아내는 작전을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후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등 통전부의 산하 조직들이 총동원돼 ‘강인덕 제거’ 작업에 나섰다. 당시 통전부에서 일했던 탈북자 C 씨가 알려준 내용이다.
이런 ‘정치투쟁’의 경우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 지령기사라고 한다. 관영 매체들을 동원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보도함으로써 남한 내 친북조직과 정치권 등을 움직이게 하는 방식이다. 기사 형식이지만 실제론 대남(對南) 지령인 셈이다. 북한은 조평통 대변인의 회견과 조선중앙통신 논평 등을 통해 “북남관계 개선과 원만한 대화를 위해서는 강인덕을 몰아내야 한다”고 계속 주장했고, 남한에서 이에 호응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결국 강 장관은 그해 5월 24일 경질됐다.
지령기사는 모두 통전부에서 공급하며 구체성 반복성 확장성을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C 씨는 말했다. 실명을 거론하는 등 구체적으로 말하고, 같은 주장을 계속 되풀이하며, 한 매체가 보도하면 다른 매체들이 받아 보도하는 식으로 주장을 확대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원칙론자인 현인택 장관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을 적용했다.
최근 북한 매체들의 보도 가운데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안철수 돌풍’에 관한 소개다. 9월 21일 노동신문의 첫 보도를 시작으로 내각 기관지인 민주조선과 조선중앙통신 보도로까지 이어졌다. 특히 민주조선은 “기성 정객이 아니라 참신한 인물을 내세워야 정권도 교체할 수 있고 인간답게 살 수도 있다는 남녘의 민심이 안철수 돌풍을 몰아왔다”는 분석까지 곁들였다. 도대체 민주선거라곤 해 본 적이 없는 북한이 누구를 겨냥해, 무슨 의도로 이런 보도를 하는지가 궁금했다.
C 씨에게 기사를 보여주며 해석을 부탁하자 1분도 채 안돼 답변이 돌아왔다. “남한을 겨냥한 일종의 지령기사다. 안철수를 들먹여 중도 민심을 친북으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그동안 남한의 민주화세력과 노동자, 소수계층(피억압계층)을 대상으로 친북세력화를 꾀했으나 이제 그 범위를 중도로까지 넓히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남한의 민주화로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 1990년대부터 군사전보다 정치전을 우위에 두는 쪽으로 대남전략을 수정했다. 남한 내 친북세력의 구축을 통한 친북정권 수립 전략이다. 군사안보 분야 전문가인 L 씨는 “북이 강성대국의 해로 선포한 2012년은 남북 대치의 주(主) 전장이 DMZ가 아니라 서울(선거 민심)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의 전략을 무력화(無力化)하려면 우리 국민이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라는 이념의 차이를 떠나 북이 던지는 메시지 하나라도 그 속내를 잘 간파해야 할 것이다. 북의 의도에 휘둘리지 않도록 우리의 정치·사회적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긴요하다.
이진녕 논설위원 (동아/111004)
김대중 정부의 강인덕 통일부 장관과 이명박 정부의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경질된 과정을 보면 묘하게 닮았다. 실명까지 거론한 북한의 집요한 비방이 계속되면서 남한에서의 거들기가 확산됐고 결국 경질로 이어졌다.
강 장관이 북한에 밉보인 결정적 계기는 1999년 4월 19일 이화여대 초청 강연이었다. 그는 “김일성 김정일 정권은 인류의 역사 진행으로 봐서 도저히 남겨 놓을 수 없는 정권이고 반드시 붕괴시켜야 할 정권”이라고 말했다. 이에 김정일은 대남선전기구인 통일전선부(통전부)에 “남한 정부 내에 잔존하는 극우세력을 솎아내는 작전을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후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등 통전부의 산하 조직들이 총동원돼 ‘강인덕 제거’ 작업에 나섰다. 당시 통전부에서 일했던 탈북자 C 씨가 알려준 내용이다.
이런 ‘정치투쟁’의 경우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 지령기사라고 한다. 관영 매체들을 동원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보도함으로써 남한 내 친북조직과 정치권 등을 움직이게 하는 방식이다. 기사 형식이지만 실제론 대남(對南) 지령인 셈이다. 북한은 조평통 대변인의 회견과 조선중앙통신 논평 등을 통해 “북남관계 개선과 원만한 대화를 위해서는 강인덕을 몰아내야 한다”고 계속 주장했고, 남한에서 이에 호응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결국 강 장관은 그해 5월 24일 경질됐다.
지령기사는 모두 통전부에서 공급하며 구체성 반복성 확장성을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C 씨는 말했다. 실명을 거론하는 등 구체적으로 말하고, 같은 주장을 계속 되풀이하며, 한 매체가 보도하면 다른 매체들이 받아 보도하는 식으로 주장을 확대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원칙론자인 현인택 장관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을 적용했다.
최근 북한 매체들의 보도 가운데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안철수 돌풍’에 관한 소개다. 9월 21일 노동신문의 첫 보도를 시작으로 내각 기관지인 민주조선과 조선중앙통신 보도로까지 이어졌다. 특히 민주조선은 “기성 정객이 아니라 참신한 인물을 내세워야 정권도 교체할 수 있고 인간답게 살 수도 있다는 남녘의 민심이 안철수 돌풍을 몰아왔다”는 분석까지 곁들였다. 도대체 민주선거라곤 해 본 적이 없는 북한이 누구를 겨냥해, 무슨 의도로 이런 보도를 하는지가 궁금했다.
C 씨에게 기사를 보여주며 해석을 부탁하자 1분도 채 안돼 답변이 돌아왔다. “남한을 겨냥한 일종의 지령기사다. 안철수를 들먹여 중도 민심을 친북으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그동안 남한의 민주화세력과 노동자, 소수계층(피억압계층)을 대상으로 친북세력화를 꾀했으나 이제 그 범위를 중도로까지 넓히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남한의 민주화로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 1990년대부터 군사전보다 정치전을 우위에 두는 쪽으로 대남전략을 수정했다. 남한 내 친북세력의 구축을 통한 친북정권 수립 전략이다. 군사안보 분야 전문가인 L 씨는 “북이 강성대국의 해로 선포한 2012년은 남북 대치의 주(主) 전장이 DMZ가 아니라 서울(선거 민심)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의 전략을 무력화(無力化)하려면 우리 국민이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라는 이념의 차이를 떠나 북이 던지는 메시지 하나라도 그 속내를 잘 간파해야 할 것이다. 북의 의도에 휘둘리지 않도록 우리의 정치·사회적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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