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현 논설위원 (2010.07.14)
<이명박 대통령은 올여름 휴가 때 요즘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를 챙기
지 않을까.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30년 동안 정치철학을 가르치는 마이클 샌
델의 강의록을 담은 묵직한 주제의 정치철학 서적이다. 이 책은 '정의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란 공리주의(功利主義)와 '정의란 개인적 선택의 자유'란
자유주의를 모두 비판한다. 결론은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共同善)을
고민하는 것'이다. 공동선이 실현된 사회의 모습은 이렇다. '부자와 가난한 사
람이 모두 보내고 싶어지는 공립학교, 상류층 통근자(通勤者)를 끌어들일 대
중교통체계, 그리고 보건소, 운동장, 공원, 체력단련장, 도서관, 박물관처럼
사람들을 닫힌 공동체에서 끌어내 민주 시민이 공유하는 장소로 모이게 하는
시설 등이 그것이다.'
아마 좌파 지식인들은 노무현 정부가 시도했던 '징벌적 과세(課稅)'의 달콤한 추억을 떠올리기 쉽겠지만 이 책은 분명히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 가난한 자를 도우려는 일부 철학자들'에 반대한다. 저자는 '정의가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소설과 실용서가 주도해 온 출판계에서 정치철학 책이 특히 20~30대 사이에 잘 읽힌다는 사실은 분명히 인문학적 사건이다. 돌이켜보면 1970년대 말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필독서가 된 적이 있다. 고도성장을 통해 산업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계층분화와 신분상승이 이뤄지던 희망의 시대였다. 동시에 부동산 투기와 지도층 특혜 비리가 성행하면서 너도나도 '소유'를 향해 줄달음치던 욕망의 시대이기도 했다. 프롬은 "산업화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과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리란 약속이었지만, 사람들은 '소유'로 인해 자신의 '존재'를 상실했다"고 갈파했다. 당시 지식인들이 즐겨 읽은 소설은 황석영의 '객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처럼 노동자와 도시 빈민 등 '소유'에서 소외된 계층의 삶을 고발한 것이었다.
오늘날 '정의란 무엇인가'란 인문서가 베스트셀러로 뜬 것은 한때 '부자 되세요'란 유행어가 지배했던 시절에 대한 반작용이랄 수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아침형 인간'만 되면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연재한 '사다리가 사라진다' 시리즈에 따르면 2년 이상 빈곤에 시달리는 가정이 20.3%로 늘었다. 대학 졸업생 50만명 중 30.3%가 3년 동안 안정된 일자리를 못 구했다는 것이 오늘날 한국사회다. '소유'를 향한 희망이 사라지다 보니 '소유'에 대한 반감이 더 높아졌고, '자유 경쟁'보다는 '공동체 정의'를 요구하는 젊은 민심이 '정의란 무엇인가'를 베스트셀러로 만들지 않았을까.
이 책에서 독자들 눈길을 끈 대목은 징병제와 모병제 논쟁이다. 저자는 공동체를 위한 시민의 의무로서 징병제의 미덕을 제시한다. 우리 사회에선 하나 마나 한 소리지만, 이 책을 읽은 청년들은 병역 의무의 '정의'가 과연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가라는 의문을 던지는 듯하다.
지도층이 납세와 병역의 의무를 다할 때 정의가 사는 법이다. 빈부 격차 없는 공교육과 공공서비스 또한 우리 사회가 지도층에게 요구하는 공동선(共同善)의 원칙이다. 한 권의 베스트셀러는 한 시대의 민심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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